짧은 연회 - 단편

짧은 연회 - 단편

시베리아 0 302

오늘은 회사가 탄생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특별한 날이다. 회장 측은 물론 각종 고위 상사들과 직원들이 한 마음이 되어 연회, 즉 파티를 벌이는 것이다.

물론 파티가 열리는 곳은 강원도에 위치한 어느 모모 호텔이다. 그 호텔에서 1박 2일로 놀고, 먹고, 싸고, 자는 거다.



“하여간 돈도 많지. 새삼스레 느끼는 거지만 이런 고급 호텔을 어떻게 매년 마다 빌리냐.”



난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현재 난 직원들과 같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물론 직원들뿐만이 아니라 상사들도 있다. 개중에는 마누라를 끼고 온 놈들도 있다.

정말인지 별 일이다.



“정말 잘도 노네.”



입술을 툭 내밀며 투덜거린다. 지금 내 앞에는 넥타이를 이마에 메고 노래인지 악다구닌지 뭔지 하는 괴성을 터트리는 인간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서 기분이 좋다지만 저렇게 추태를 부리고 싶을까?

저걸 사진이나 영상기로 찍어 보관하여 나중에 본인들에게 보여주면 어떻게 될까나?

그런 생각을 하며 맥주를 들이킬 때, 내 직급 상사인 이 대리가 자리에 일어서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미안미안. 숙소에 뭔가 놓고 온 것이 있어서 말이지. 잠시 자리를 비운다.”



난장판이 벌여지는 이곳은 호텔 뒤편에 있는 조그마한 공원이다. 공원 주제에 호수까지 있어서 그리 싫지 않은 곳인데 이곳에서 호텔의 숙소까지 가려면 최소한 30분 이상이 걸린다.

워낙에 후미진 곳이라 그런지 괜히 땅덩어리만 넓은 탓이었다.



“그럼 난 갔다 올게. 나 올 동안 내 아내에게 이상한 짓 하면 모두들 알아서 해. 알았지?”



아내라…, 난 그 말을 한 이 대리의 부인을 바라보았다.

이 대리의 부인은 30대 중반의 나이를 가진 여자로서 꽤나 매력적인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운동으로 몸을 다졌기에 나올 덴 나오고, 들어갈 덴 들어갔기 때문이다. 또한 가슴이나 엉덩이는 얼마나 풍만한지 너무 요염해서 아직 20대 후반인 나도 절로 눈길이 갈 정도다.



‘나도 슬슬 결혼해야 하는데….’



젠장! 결혼한 녀석들을 보면 괜히 옆구리가 시려서 보기 싫다.

이걸 흔히 쏠로의 고통이라고 하지, 아마?

절로 터져 나오는 한숨에 주체를 못할 때 이 대리가 호텔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렇게 걸어가면 한 1시간 이상이 걸린다. 여기에서 뛰어가도 최소한이 30분인데, 저렇게 느릿느릿해서야…. 또 이쪽으로 오려면 다시 갔던 시간까지 있으니 적게 잡아도 1시간 반 이상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뭐, 술에 잔뜩 취한 것 같으니 느릿느릿하게 걷는 것은 현명했다. 그 상태로 질주하면 거의 자살행위이니까.



“허허, 이 친구, 급하긴 급했나 보군. 몸만 가다니….”



나의 이 대리가 가는 꼴을 보며 어느 부실의 상사가 나직이 한탄했다. 나도 같이 한탄했다. 상사의 말대로 이 대리는 몸만 갔다. 술에 잔뜩 취한 자기 마누라나 소지품을 내팽긴 채로.

그때 그 상사와 나의 시선이 허공에 부딪혔다.

그 상사가 날 불렀다.



“이보게, 이쪽으로 오게.”



“예.”



뭐지? 왜 날 불러?



“저기…무슨 일이신지….”



내가 쭈뼛쭈뼛 다가가며 물어오자 그 상사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 이름이…?”



“기, 김영호라고 합니다.”



“그래 김영호 군. 내 자네에게 부탁할 것이 있는데 말이야.”



부탁? 아무리 자릿세 좀 먹었다 하지만 처음 본 사람에게 부탁을 해도 되는 거냐?

하지만 난 꾹 그 말을 참으며 가만히 있었다.

상사가 계속 말했다.



“여기 있는 이 사람을 호텔 숙소까지 데려다줄 수 없는가?”



상사가 가리키는 이 사람은…. 어라? 이 대리의 마누라잖아?

이 여자를 왜 나에게…?

그런 나의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그 상사가 웃으며 다시 말했다.



“하하, 이 중에서 자네만이 유일하게 정상인 것 같아서 그러네.”



상사의 말에 난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 손바닥에 주먹을 내리치며 감탄했다.

과연 이 중에서 나만이 유일하게 정상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사들이나 직원들이 술에 흠뻑 취해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들 중 유일하게 나만이 제대로 몸을 가누고 있었다.



“그래도 그것은 좀….”



이 대리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내 마누라에게 이상한 짓 하면 알아서 하라고….

그런 내 생각을 알아챈 듯 그 상사가 너털 웃었다.



“하하, 그 친구는 걱정 말게. 설혹 들키더라도 내가 알아서 해주지. 자네는 이 분을 호텔 숙소까지 데려주면 되는 거야.”



도대체 뭘 믿고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아무리 내가 이들 중에서 술에 안 취했다고 하나 나도 건장한 남자다. 술에 만취된 젊은 부인을 숙소까지 데리고 가는 것은 여러 사람들에게 안 좋은 소문이 날 수 있다.



“그,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하하, 걱정이 많은 친구군. 내가 알아서 해준다는데 뭐가 그리 불만인가?”



니미럴.

명령하면 따르고, 시행하는 것이 이 사회의 법칙이다.

난 내 앞에서 마냥 웃고 있는 상사의 얼굴을 외면한 채 이 대리의 마누라를 보았다.



‘씨발! 정말 어떻게 하라고….’



거북감이 들었다. 아무리 이 대리의 마누라라고 하지만 저 여자 때문에 나만 나쁜 놈으로 소문나면 이건 정말이지 최악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 여자에게 다가간 나는 그녀의 한 팔을 들어 올려 내 목에 걸친 다음,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이 대리의 부인이 비틀거리며 나에게 몸을 밀착시켜왔다. 술 냄새와 화장품 냄새가 섞인 그 냄새란…!



아무튼 난 동료들이 눈치 챌라 재빨리 호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까 전의 그 상사가 나에게 이렇게 외치는 거야.“



“잘 모셔다 드려야 하네!”



‘컥!’



불안한 느낌이 들어 은근슬쩍 고개를 뒤로 돌리니 나와 친하게 지내던 몇몇 동료들이 날 이상하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그걸 보며 속으로 ‘씨팔, 씨팔’을 연속으로 외쳤다.

아마 다음 날에는 나와 이 여자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쫘악 퍼질 것이다. 그리고 이 여자의 남편이 나에게 냅다 달려와서 행패를 부리겠지. 자기 마누라를 어떻게 했냐! 라고 외치면서.



“하아.”



믿을 놈 하나도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꼭 감았다.



#



걸은 지 30분 정도가 되었을까? 인사불성이 되어 자꾸 술주정을 부리는 이 젊은 부인은 말 그대로 심히 난감덩어리였다.

걷는 내내 다리에 힘을 빼지 않나, 기우뚱거리면서 보행에 지장을 주고 있지 않나….

차라리 업고 가는 것이 편하겠다고 생각해서 이 여자를 업었더니 글쎄 내 귀를 자근자근 씹지 않나….

이 년아! 넌 전생에 나랑 원수 사이였냐? 왜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하는 거냐고!

그렇게 화를 풀지 못하고 씩씩 거릴 뿐이었다.



뭐, 그래도 나쁜 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인의 팔을 내 목으로 걸쳤기 때문에 그녀의 풍만한 한쪽 유방이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고, 신체 구조상 또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잡고 있었기에 날씬한 몸매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로 붙어 있지 않은가? 비록 만취했더라도 젊고 색기 넘치는 부인의 몸을 전신으로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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